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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기독숭실인

윌리엄 베어드 박사 (William M. Barid, 1862~1931)

베어드 박사는 1862년 미국 인디아나 주에서 출생했다. 1884년 하노버 대학(Hanover College)과 1888년 맥코믹 신학교(McCormick Seminary)를 각각 졸업했다. 북장로교 선교본부로부터 부산 지방 선교사로 임명되어 1891년에 후일 초량교회의 모체가 된 부산 영선현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와 1897년 10월 평양에서 숭실학당의 전신인 중등교육과정 <사랑방 교실>을 시작했고, 1905년 대학부를 설치했다. 1897년부터 1915년까지 숭실학당 초대교장을 역임했다. 시카고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 신학과에서 다시 히브리어 공부를 했고 한국에 와서는 김인준 목사, 남궁혁 박사 등과 함께 구약성서 개역에 힘썼으며, 1931년에 별세했다. 그는 평생 한국 사람을 섬겼다.
양반이나 상놈이나, 남자나 여자나, 나이 많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구분하지 않고 섬겼다. 겸손과 섬김의 '숭실기독교학'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조지 맥큔 박사 (George M. McCune, 1878~1941)

맥큔 박사는 1862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출생했다. 1913년, 105인 사건과 관련하여 1차 추방되어 귀국했다가 1923년 다시 한국에 교육선교사로 입국했다. 1928년에는 평양의 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학교 교장직을 겸임하게 되었다. 1936년 일본제국주의의 총독부가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하여 맥큔 교장의 인가가 취소되었으며, 그는 일본 정부에 의해 한국에서 2차 추방되어 귀국했다. 신사참배 거부로 1938년 숭실전문학교는 폐교되었다. 귀국한 맥큔박사는 1936년부터 시카고의 무디성서신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가 1941년 별세했다. 그는 목숨을 내어놓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정신을 '숭실기독교학'에 접목시켰다.

한경직 목사 (1902~2000)

평양 숭실대학을 마치고 미국 유학 뒤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한경직 목사는 해방되던 1945년, 현재 영락 교회의 전신인 베다니 교회를 세웠다. 이후 한국 전쟁 중에도 민족과 교회 재건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그는, 1945년 숭실대학 학장을 시작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홀트양자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교육과 사회사업을 공헌했다. 일생 동안 민족과 조국의 미래를 위해 실천하는 삶을 살며 한국 장로회 성장의 최고 기여자로, 세계선교와 평화확산의 지도자로, 숭실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그는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블턴 상'을 수상했다. 그는 겸손의 생활, 섬김의 목회, 무욕의 삶을 꾸렸다.

김양선 목사 (1907~1970)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설립자인 매산(梅山) 김양선은 1970년 2월 평양북도 의주에서 김관근 목사와 백관성 권사의 3남으로 태어났다. 매산은 아버지가 세운 중원중학교를 거쳐 선천의 신성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그리고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숭실 재학 중 그는 비밀결사인 '청구회(請求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목회자와 교육가로서 많은 교회와 학교 설립에 관여했던 매산은 1954년 숭실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래 1970년 타계할 때까지 한국사, 한국교회사, 고고학 등의 연구와 교육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김양선은 한국 기독교사를 선교사관이 아닌 주체적 수용사관으로 읽고 연구했으며, 한국교회를 민족교회로 일구어 낸 독보적 기독교 역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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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5.04.13